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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예 찰리커크 추모글

원더걸스 선예, 찰리커크 추모글이 기독교인으로써 화가 나는 이유

찰리커크 죽음 후 추모글을 올린 원더걸스 선예
죽음은 애도 할 수 있지만, 그 이유와 해명이 화가 나는 이유
예수님보다는, 바리새인들에 가까운 그들

찰리커크의 죽음 후 원더걸스 출신 선예는 그에 대한 추모글을 올렸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예의 추모글의 내용은 기독교인으로써 매우 짜증이 나는 내용이었으며, 이후 선예의 대응 멘트는 짜증을 넘어서 화까지 나는 글 이었다.

찰리커크는 예수 그리도스를 전했는가?

선예의 찰리커크 애도문이 한 생명의 죽음에 대한 애도문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혹은 그 뒤에 그녀가 남긴 말대로 “비극적인 총격살인을 당한 남편의 죽음에 대한 아내의 호소가 담긴 영상을 보고, 먹먹한 가슴으로” 추모글을 올렸다면 그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선예는 죽음에 대한 추모가 아니라, 무척이나 종교적인 글을 올렸다. 찰리커크는 종교를 전하다 죽은 순교자인가? 혹은 종교인이라고는 할 수 있나? 어떻게 보아도 찰리커크는 정치 인플러언서다.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은 유타 밸리 대학교의 행사도 아메리칸 컴백 투어로, 종교적인 행사가 아닌 말 그대로 정치 행사했다. 그의 마지막 연설도 총기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도대체 그리스도를 전했다는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물론 찰리커크가 정치인이었지만, 그가 매우 기독교적인 사람이었고. 선예가 무려 요한일서 4:9-10을 인용할만큼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동안 찰리커크는 어떠한 발언들을 하였을까?

It’s worth to have a cost of, unfortunately, some gun deaths every single year so that we can have a Second Amendment to protect our god-given rights.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를 지키는 수정헌법 2조를 위해서라면, 안타깝지만 매년 어느 정도 총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죠.

만약 미국의 개입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수천만 명의 국민, 훌륭한 기업들, 그리고 이 자비롭고 친절한, 정말 멋진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을 거란 말이죠. 대신 북한처럼 방문할 수도, 말할 수도 없고, 선전과 세뇌만 당하는 끔찍한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을 겁니다.

Submit to your husband, Taylor. You’re not in charge.
남편에게 복종해 테일러, 너는 결정권자가 아니야
(약혼소식이 알려진 테일러 스위프트에게)

미국 헌법 어디에도 ‘민주정’이라는 개념은 없습니다. 저는 대의제 정부를 지지하지만, 민주정 자체를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이 둘은 큰 차이가 있고, 그 구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민주정에 대해 묻고 있는데 민주정은 미국의 가치가 아니고 과거에도 아니었으며 앞으로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링크

British colonialism actually made the world decent
영국의 식민주의가 세계를 품위 있게 만들었다 링크

White college indoctrinated women will ruin America if we let them. They are brainwashed. They are completely indoctrinated. The worldview that is being uploaded to young women on a daily basis is hyper narcissistic, hyper selfish.
백인 여자 대학생들을 방치하면 미국을 망칠 것이다. 그들은 세뇌되어 있다. 완전히 주입된 상태다. 매일 젊은 여자들에게 주입되는 세계관은 극도로 자기중심적이고, 극도로 이기적이다.

Black women do not have brain processing power to be taken seriously. You have to go steal a white person’s slot
흑인 여성들 (미셸오바마, 조이리드, 세일라잭슨리, 커탄지브라운잭슨)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두뇌 처리 능력이 없다. 너희는 백인의 자리를 뺏어야만 한다 링크

사실 찰리커크의 어록은 너무나 많아서, 대충 몇개만 가져와도 이렇다. 도대체 찰리커크의 어느 부분에서 기독교인로서의 정체성이 나타나는가?

이러한 발언을 하는 사람을 예수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선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솔직히 나는 요한일서를 찰리커크에게 인용한 선예에게 이 구절을 인용하고 싶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출20:7, 신5:11)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인이 믿는 신앙은 무엇인가? 교회와 국가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며, 정치행사에서 예수님을 언급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행동인 것인가.

기독교인으로써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치, 종교, 미디어, 사업, 가정, 교육, 예술, 엔터테인먼트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할 일 인가?

선예의 종교관이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나는 기독교를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 이라는 단어로 밖에 표현을 하지 못 하겠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가 인용한 요한일서의 구절 또한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매우 잘 알려주는 내용이다.

기독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삶이 주 예수의 뜻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가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교회를 다니는 것,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밝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과연 찰리커크의 언행은 과연 예수님을 닮았는가? 그의 행동과 말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는가?

선예 찰리커크 추도 후 해명문은 화가 나는 수준

찰리커크의 죽음 후 그녀가 어떠한 분노표출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그 중에서는 분명 선을 넘은 심한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선예의 해명문 또한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선예는 자신을 비난 하는 사람들을 아주 단순하게 치환한다.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사람, 침묵하지 않아서 화내는 사람. 선예의 잘못은 없다. 선예는 오로지 선의로 죽음을 추모하는 사람이고, 그녀가 심지어 요한일서를 언급하며 행적에서 사랑보다 배타와 혐오가 더욱 짙은 사람을 예수님을 이야기해도 그녀를 비난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개신교인의 아픈 모습

선예의 이러한 모습은 개인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많은 이들에게서 보이는 아프고 슬픈 모습이다. 그들은 누군가의 행동이나 발언보다. 그가 어디에 속해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기독교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가 자신이 기독교인이요! 나는 목사요! 하면 편을 들기 일수다. 그리고 누군가의 행동이 예수님을 떠올린만큼 사랑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날카로운 눈빛으로 바뀐다. 특히 개신교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더욱 심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평생을 나병환자를 보호하는 수녀님을 보면서도, 혀를 차며 이단이라고 하는 개신교인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같은 기독교인인 카톨릭 수녀님을 보면서도, 아주 쉽게 이단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개신교인은 안타깝지만 그리 그물지도 않다.

나는 선예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한국 개신교인의 흔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찰리커크가 생전에 얼마나 혐오적인 발언을 하였든, 배타적인 발언을 하였든. 그 모습이 얼마나 예수님께서 멀리하셨고, 화내셨던 모습이든. 그들은 그것보다는 그가 교회를 다닌다, 목사 직위를 가졌다, 개신교인이다라는 겉모습을 더욱 중요시한다. 그 모습은 예수님이 힐난하셨던 바리새인과 큰 궤를 같이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혐오를 고민하는가?

선예가 추모 스토리 후 남긴 해명문(?)에 가까운 인스타 내용 중에 인상 깊은 애용이 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솔직히 화를 넘어서, 아 이 분은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제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또 다음세다가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고민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말만 보면,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사람들이 찰리커크에 대해서 분노했던 이유다. 찰리커크는 혐오를 분노를 차별을 주장했던 정치인이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했던 정치 인플루언서가 찰리커크이다.

선예가 생각하는 세상은 그것인가, 차별과 혐오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이. 원더걸스 선예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인가?

흑인을 능력이 없다고 말하며, 식민주의가 세상을 품위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하는 그런 생각과 사상이 그녀가 그렇게 고민하고 살아가는 길에서 만난 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찰리커크 추모 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나는 찰리커크의 죽음 자체는 추모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죽음이든 살인을 정당화하기는 어려우며, 그가 심지어 총기로 인한 사망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더라도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였기에 그를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추모는, 그 죽음 자체에 대한 추모여야 한다. 하지만 선예의 추모는 그것과는 궤를 달리했다. 특히 나는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던 그를 향해 요한일서를 언급하며 추모를 하는 것은 이해 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선예에게 정말로 묻고 싶다.
선예는 그가 정말로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올린 것인지..
정말 선예가 믿는 예수님의 길은 찰리커크가 말한 그 길 인 것인지..
그리고 그 결론이 그녀가 말한 것 처럼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 후 나온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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